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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 잊혀진 여름 축제, 그 속에 담긴 농민들의 삶과 이야기

by 돈쭈리 202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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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百中) - 농민들의 여름 축제, 그 속의 이야기 잊혀진 한국의 세시풍속

백중(百中)은 음력 7월 15일에 열리던 농민들의 특별한 축제입니다.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이 날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동안의 수고를 내려놓고 마음껏 즐기던 날이었죠. 씨름부터 술잔치까지, 백중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서 농민들의 삶과 공동체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백중의 숨겨진 의미와 지역마다 다르게 펼쳐졌던 전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 날은 농민들이 여름철 중 가장 중요한 행사로 삼았던 백중날로, 세벌김매기(논밭에서 세 번째로 잡초를 매는 작업)를 마친 후 휴식을 취하며 축제를 즐기는 날입니다. 

백중은 단순한 휴식의 날을 넘어, 마을 공동체가 함께 어울리며 노동의 피로를 풀고 놀이를 즐기는 농민들의 명절이었습니다.

백중의 기원과 의미
출처 국가유산청

백중은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백종(百種), 망혼일(亡魂日), 중원(中元) 등으로 지역마다 다르게 불리며, 불교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원래 백중은 불교의 우란분재(盂蘭盆齋)라는 제사에서 비롯되었는데, 조상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음식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습니다. 이 불교적인 의미가 농촌에서는 노동과 휴식을 결합한 농민 축제로 발전하게 된 것이죠.

백중날의 다양한 기록
출처 국가유산청

백중에 관한 기록은 조선 시대부터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17세기 김육의 『송도지』에서는 이 날을 ‘백종’이라 불렀고, 남녀가 함께 술과 음식을 마련해 조상의 영혼을 부르며 기원했다고 전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일제강점기까지도 이어졌으며, 농민들에게는 중요한 여름 축제의 날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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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날, 농민들의 축제
밀양 백중놀이 / 작두말타기 출처 _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백중날은 단순히 제사만 지내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이 날은 농민들이 그동안의 피로를 풀고 마음껏 즐기는 축제의 날이기도 했습니다. 씨름, 들돌들기, 호미걸이 같은 전통 놀이가 지역마다 다양하게 펼쳐졌습니다.

특히 머슴들은 이날 새로운 옷을 선물받고, 장터로 나가 하루 종일 즐겼습니다. 씨름 대회가 열리면 머슴들이 참가해 힘을 겨루었고, 이기면 송아지를 상으로 받기도 했습니다.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머슴들은 승리의 기쁨을 나누며 한 해의 고된 노동을 잠시 잊었습니다.

지역마다 다르게 즐긴 백중놀이

백중놀이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경기도에서는 ‘호미걸이’라는 놀이가 있었고, 경상도에서는 ‘풋굿’이라는 농민 축제가 열렸습니다.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술멕이’나 ‘두레먹기’라는 잔치를 열고 하루 종일 술과 음식을 나누며 즐겼습니다.

백중날은 단순히 놀이만 하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통과의례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진서턱’이나 ‘꽁배술’ 같은 의식을 통해 청소년들이 정식으로 두레(마을 공동 노동조직)의 일원이 되며, 마을 어른들에게 인정을 받는 중요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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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의 의미와 현재

백중은 농민들에게는 잠시 농사일에서 벗어나 공동체와 함께 웃고 즐기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을 통해 농민들은 일 년의 고된 노동을 보상받았고, 공동체 안에서의 유대감도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두레가 사라지면서 백중의 전통도 점차 잊혀졌습니다. 다만 밀양 백중놀이 등 몇몇 지역에서는 그 전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백중은 단순히 즐기는 날을 넘어서 한국 농촌의 공동체 정신과 농민들의 끈끈한 연대를 상징하는 날이었습니다. 이 전통이 우리 문화 속에서 계속 살아남아, 현대인들에게도 그 의미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마무리하며..

백중은 한국 농촌 사회의 소박하면서도 힘찬 축제였습니다. 지금은 잊혀져가고 있지만, 백중이 남긴 공동체의 힘과 농민들의 노고를 기억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우리의 전통 속에서 이런 축제들이 재조명되고, 함께 나누며 즐기는 문화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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